원두의 상태와 추출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디개싱(또는 에이징) 상태도 마찬가지다.
Text  Saerom Joo

 


 

 

매장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커피가 갑자기 소진되어 충분히 안정화 되지 않은- 예를 들면 전 날 볶은 커피를 호퍼에 담아야 하는 돌발상황이 찾아온다. 특히 겨울철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디개싱 속도가 늦어 추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 ‘갓 볶은 신선한 커피’를 투입하니 더 좋은게 아니겠느냐, 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커피를 볶으면서 나오는 가스(주로 이산화탄소CO2)가 커피 성분의 추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디개싱 Degassing은 이러한 방해 요소를 제거해 원활하게 커피의 맛과 향이 추출되도록 하는 작업이다.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로스팅 뿐 아니라 원활한 추출을 위한 디개싱에도 어려움이 많다. 다음 그래프를 참고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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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rce : Understanding the Formation of CO2 and Its Degassing Behaviours in Coffee, Xiuju Wang, 2014

 

위 그래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외부 온도에 따라 디개싱 타임은 변동이 있다. 다음 보기를 ‘겨울철의 서울 지역 매장’ 으로 적용한다면 아래와 같은 상황으로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 4℃ : 매장을 마감하고 원두를 호퍼에 놔두고 간 상태
– 15℃ : 오전에 매장을 오픈한 상태
– 25℃ : 점심시간 이후
– 40℃ : 러쉬타임 등의 이유로 그라인더가 과열되었을 때

이렇게 보면 ‘겨울철에는 커피가 잘 추출이 안 된다’ 라는 말에서 디개싱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에이징 Aging’ 이라 말하는 오랜 시간 놔두어 가스를 빼는 작업은 일자가 지날 수록 산패의 위험에도 노출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치하면 좋을까?
커피볶는곰의 바리스타로 근무하면서 매장에서 디개싱이 잘 되지 않은 상태의 원두를 가지고 다양한 변수를 조절해 본 경험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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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압력을 조절한다.
커피볶는곰에서는 산레모의 오페라를 사용하고 있다.(관련 글) 이 머신은 추출 압력을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세팅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8.5Bar의 압력을 이용해서 추출을 진행한다. 이렇게 추출을 해 보니 에스프레소에서 치즈를 먹고 난 뒤에 기름막이 남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는 커피 성분 중 지용성분이 더 많이 추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이에 압력을 8Bar로 조정하여 추출하니 부담스러울 정도의 기름진 질감은 나아졌지만, 낮아진 압력과 짧아진 추출시간만큼 커피 성분을 제대로 추출하지 못하고 훑어버리는, 마치 과소추출이 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에 접촉시간을 늘려 가용성분을 좀 더 추출하고자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도징하여 다시 추출하니 나아지긴 했지만, 다채로운 컵노트를 살리는 데엔 부족했다.

2. 분쇄도를 조정한다.
공기와의 접촉면을 늘리면 디개싱을 빠르게 되지 않을까 해서 좀 더 가늘게 분쇄도를 조정해보았다. 결과적으로는 분쇄된지 얼마 안 된 원두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스의 추출저항과 가는 분쇄도가 맞물려 추출 때 접촉시간이 의도보다 길어짐으로 인해 쓴맛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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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리 인퓨전 시간을 늘린다.
프리 인퓨전 시간을 늘리면 브루잉을 할 때 처럼 커피 파우더에 담긴 가스가 빠져 나가 어느 정도 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라고 예상하여 프리인퓨전을 길게 가져가 보았다. 확실히 프리 인퓨전 시간을 늘리니 가스가 주는 추출 저항은 줄었지만, 그와 함께 더 많은 커피 성분이 추출되었다.
단순히 수치적 농도를 따지고 본다면 안정화 된 커피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그 맛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였다. 디개싱의 정도보다는 호퍼 안에 있는 원두의 온도에 따라 프리 인퓨전을 조절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 참고 아티클 : http://prism.coffee/archives/138 )

 

4. 추출 양(시간)을 늘린다.
가스로 추출 저항이 걸려 원활하지 않으니 좀 더 길게 추출해 맛을 더욱 뽑아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추출 양을 늘린다는 것은 그만큼 추출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결국 쓴 맛이 부각되는, 묽고 밋밋한 커피가 추출되어 그다지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5. 자연스럽게 온도가 상승하길 기다린다.
자연적 안정화를 위해 온도를 높이는 방법은 원두 사용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좋은 방법이다. 원두 내의 가스를 자연스럽게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방법이기에 위에서 열거한 방법 중에서 제일 괜찮은 결과물을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위의 방법들에 비해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자칫하면 제대로 디개싱 되지 않은 채 산패로 이어질 경우가 있다.

 

6. 도징 챔버에 분쇄된 원두를 이동시킨다.
도저 모델 그라인더를 사용할 경우엔 디개싱 작업을 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분쇄된 커피 파우더를 도징챔버에서 다른 용기로 옮겨 담은 뒤 다시 도징챔버에 넣는 식으로 몇 번을 반복하면 자극으로 인해 가스를 빼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처리하게 되면 에스프레소 샷 뒤끝에 느껴지는 씁쓸한 후미를 없애는 데에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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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앞에 열거한 방법들을 시도했을 때, 맛의 발현 정도나 질감, 무게감 등 항목마다 각기 강세를 보이는 부분들이 달랐다. 이는 방법에 따라 커피의 특성을 구성하는 향미 성분들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압력의 조정은 지용성 성분의 추출력에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분쇄도 조정과 여섯 번째의 분쇄된 원두를 이동시키는 방법은 파우더를 일부러 공기 중에 노출시켜 디개싱을 유도한 방법이었으며,
세 번째, 프리인퓨전과 네 번째 추출양의 조절은 추출을 통한 제어였고,
다섯 번째, 원두 자체의 온도를 높이는 것은 원두 내부의 기체 운동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화가 되는 것이 제일이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득이하게 디개싱되지 않은 원두로 추출을 해야 한다면 위의 사항들을 고려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원하는 추출 포인트를 잘 잡을 수 있길 바란다.